어떤 남매



그 애랑 나는 한집에 살았고 한 가족이었다. 그러니까 남매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동갑이지만 쌍둥이는 아니다. 그렇다면 짐작할 수 있을 텐데 우리는 혈연관계는 아니고, 부모님의 재혼으로 인해 묶인 의붓남매다.

엄마는 내 아빠랑 이혼한 후에 연립주택으로 이사를 했고, 옆집에 그 애가 아빠랑 단둘이 살고 있었다. 그 애 아빠는 오 년 전에 아내와 사별을 했다고 한다. 키가 크고 멀끔하게 생긴 아저씨였다. 슈트 핏이 아주 말끔했다. 출근 시간이 우리 등교 시간과 비슷한지 자주 문 앞에서 맞닥뜨렸기 때문에 자주 봤다. 날 볼 때마다 아저씨는 머쓱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곤 했다. “안녕, 이제 학교 가니?” 판에 박힌 멘트였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나를 주택 입구까지 바래다주기 시작했다. 근처 공원에 아침 운동을 가려는 거라고 했지만 그렇다면 굳이 내 등교 시간에 맞춰서 나갈 필요가 없을 텐데. 꾸민 듯 안 꾸민 듯 머리와 옷을 세팅할 필요도 없을 테고. 반면 신경 쓸 것 없는 나는 얼굴에 물만 묻히고 머리를 질끈 졸라매고 현관을 나섰다. 타이밍이 어찌나 절묘하던지 그때면 옆집 부자가 현관 근처에 서 있고는 했다. 마치 꼭 우리 집 현관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기만 한 것처럼. 아저씨는 우리를 향해 예의 그 멋쩍은 웃음을 머금었고 그리고 그 애는,

정수경은 아저씨 옆에 삐딱하게 서서 우리를 쳐다봤다. 퉁명스러운 눈길을 던지고는 우리 엄마한테만 “안녕하세요.” 목소리만은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는 나를 보고는 그냥 한쪽 눈만 찡그리고, 내가 “안녕.” 하고 먼저 인사하면 고개를 끄덕이고는 휘적휘적 복도를 걸어가 버렸다. 나는 결코 그 뒤를 쫓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공교롭게도 우리의 앞길이 같았기에 같은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엄마 옆에서 좀 비켜줘야 할 것 같은 압박감도 들었고.

그래서 엄마를 아저씨랑 등 뒤에 남겨두고, 정수경의 조금 등 뒤에서 어색하게 걸어가고 있노라면 ‘차라리 이 상황이 빨리 끝났으면.’ 하고 바랄 수밖에 없었다.

과연 엄마는 1년 뒤에 옆집 아저씨랑 재혼을 했다. 일사천리였다. 물론 그동안 함께 등교하는 것 말고도 틈만 나면 반찬을 갖다준다느니 제철 과일을 나눈다느니 누구 생일이니까 같이 저녁밥을 먹는다느니 교류한 게 많아서 얼굴 본 건 보통 이웃들 간의 교류를 훨씬 넘어섰다. 아저씨는 점점 더 편안하게 우리를 대하게 됐지만 정수경은 아니었다. 걔는 우리가 저녁밥을 함께 먹거나 휴일 점심때를 함께하거나 할 때마다, 뭐 나중에는 어색하고 미묘한 거리를 걷어치우고 등교 때마다 그 애랑 나란히 걸어가게 됐는데, 그때마다 정수경은 메뚜기 머리라도 산 채로 씹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 애가 우리 엄마랑 나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점은 명백했다.

한번은 학교에서 왜 그러냐고 물어봤다. 걔랑 나는 다른 반이었는데, 복도 지나가는 그 애를 불러다 세워 물어봤던 거다. “야, 너 왜 우리만 보면 그따위로 굴어?”

“뭐?”

정수경이 기막히다는 얼굴로 눈을 잔뜩 찡그렸다. 난 저 애 무표정이나 찡그리는 표정밖에는 본 게 없다. 나는 이렇게나 (예의를 차려) 웃어주는데.

“아니, 너네 아빠가 우리 엄마가 좋다잖아. 그걸 왜 옆에서 초를 치냐고. 우리가 맘에 안 들어?”
“아주머니는 좋은 분이라고 생각해.”

정수경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 말인즉슨 나는 별로라는 건데, 뭐 좋아.

“나한테는 그래도 되는데 우리 엄마한테는 잘해.”
“잘하고 있잖아.”
“얼굴 좀 펴라고.”
“난 원래 얼굴이 이래.”
“친구들이랑 있을 때는 안 그럴 거 아냐.”

나는 참을성을 가지고 타일렀다. 정수경이 대꾸했다.

“친구들이랑 있을 때도 보통 이러거든? 대략 80퍼센트 정도.”
“그럼 친구가 없을 텐데.”
“많지는 않지.”
“솔직하긴 하네. 좋아, 그럼 우리 엄마 쪽을 볼 때마다 그 20퍼센트를 할애해 줘. 안면근육에 이상이 생기면 나를 봐. 그때는 편하게 해도 되니까.”
“…….”

정수경이 나를 빤히 봤다. 그 애가 2초 이상 나를 쳐다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정수경의 눈은 밝은 갈색이었다. 아주 예뻤다.

“효녀네.”

정수경이 툭 말했다. 나는 가슴을 쭉 펴고 말했다.

“난 우리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거든. 엄마는 사랑이 아주 많이 필요한 사람이야. 아저씨, 좋은 분인 것 같고, 엄마가 잔뜩 신나 있어서 응원해 주기로 했어.”
“……아, 그래.”
“그럼 이해한 거지?”
“보고.”
“보고 말고 할 게 어딨어.”
“여기.”

하면서 그때에야 정수경이 픽 웃었는데, 못 봐줄 얼굴은 아니었다. 짜식, 좀 웃고 다니지. 정수경을 볼 때마다 서로를 팔꿈치로 치며 속으로 꺅꺅거리는 여자애들이 이해되는 기분이었다. 물론 정수경은 별로 내 취향이 아니니까 나는 그럴 일 없었다. 유치한 애송이는 싫거든.


prev 1 ··· 4 5 6 7 8 9 10 ··· 50 next